[갑을유감]
#1
아무 문제없이 잘쓰던 스마트폰이 갑자기 고장나서 AS센터를 찾았다.
부팅이 되지 않는 증상이었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오르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 사이 틈으로
내 폰이 2층 높이를 자유낙하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의 충격이 누적되어 있다가 문제가 된 것일까 짐작할 뿐이었다.
보증기간은 아깝게 2주가 지난 후 였다.
무상수리는 불가능했고 수리기사님은 메인보드 교체비용으로 27만원을 청구하셨다. #시그니쳐폰의위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휴대폰을 싸게 사려면 비싼 요금제에 가입해야만하는
신묘한 우리나라 통신사의 정책 덕분에 강제 가입했었던 폰케어 보험이 구세주가 되었다.
내가 부담할 금액이 27만원에서 5만 4천원으로 줄어드는 마법이 일어났다. #폰케어만세
#2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났다.
메인보드를 교체한 폰이 간헐적으로 기지국 신호를 못잡는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유심칩이 문제인가 싶었지만, 다른 폰에 내 유심을 꽂았을 땐 잘 작동했다.
아무래도 안테나의 문제이거나 메인보드가 불량인 문제였다.
그런데 하필 내가 수리받은 날은 금요일이었고
돌아오는 월요일은 대체공휴일.
금요일 오후와 화요일 오전을 합쳐 꼼짝없이 4일을
#연결되지않은원시인 #와이파이난민 으로 살게 되었다.
#3
돌아오는 첫 평일이었던 지난 화요일 아침.
난 출근을 하자마자 외출계를 내고 AS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재수좋게도 지난 금요일에 수리를
맡아주신 같은 기사님 창구로 배정을 받았다.
그런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기사님 표정이 심각했다.
'아이고, 큰일났구나' 하는 표정이셨다.
나는 상황을 설명했고, 적어도 나보다 10살 이상은
더 연배가 되어보이시는 수리기사님은 상황을 듣자마자
얼굴을 붉히시고는 허리를 깊게 구부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셨다.
아무래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때마다 큰 소리를 지르는
이른바 '고객님'들 때문에 한두번 어려움을 겪어보신게 아닌 눈치셨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내가 불편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 불편은 기사님의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었다.
분명 지난 금요일에 메인보드를 교체했을 땐 정상 작동했었고,
기사님이 교체하는 메인보드가 양품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 말이다.
굳이 책임소지를 가르자면 LG서비스센터가 아닌
그 부품을 만들고 제대로 테스트 하지 않은 채 출하한 LG전자의 책임일 것이다.
의미없는 일이다.
어차피 얼마간 존재하는 나쁜 확률의 문제에 내가 걸려든 것 뿐이다.
#4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말하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기사님의 표정이 한번 더 어두워졌다.
"고객님, 이거 다시 교체해야 할 것 같은데, 금요일에 교체해드린 G6 메인보드가 저희가 가진 마지막 재고였습니다.
아마 내일까지 맡겨주시고 하루정도 저희가 드리는 임대폰을 사용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하시는 기사님의 표정이 무슨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는 점이다.
내 입장에선 그 상황이 좀 답답하고 불편하긴 했지만,
뭐 말하자면 금요일에 마지막 재고를 소진한 내 영향도 어느정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난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곤 임대폰을 받았다.
기사님께서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셨는지
"계신곳을 알려주시면 수리를 마친 후 제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라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나는 그 분의 낮은 자세가 유난히 부담스러웠다.
폰을 찾아 나오는 길엔 허리를 깊이 숙이고 친절한 어감으로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그나마의 최선이었다.
#5
나는 나름 비판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만큼 날카로운 사람이고,
내가 손해보는건 지독히 싫은 사람이다.
나는 자칭타칭 나름 진보적인 인물이자 공동체 주의자이다.
하지만 이 조차도 그저 인간적이고 착하기만한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보수주의와 개인주의가 타인의 이익을 착취하거나
부당한 과다 이익을 취하거나 혹은 더 큰 공동의 이익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며 분노를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6
그런 나의 논리 속에서 갑질은 여러모로 이율배반적인 행위다.
특히나 가진 것 없는 사람들끼리의 갑질은 더더욱 그렇다.
내가 기껏 누군가에게 갑질을 해봐야, 나도 다른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을이 될 뿐이다.
파레토 효율의 세상은 우리가 서로 갑질을 하지 않는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