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쯤에서 우리는 지나칠 수 없는 몇 가지에 질문에 부딪치게 된다. 도대체 왜 우리는 여전히 '공동체'여야만 하는가? 이런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구멍난 둑을 몸으로 막았다는 네덜란드의 한스처럼, 수많은 신앙의 헌신자들이 명예와 시간은 물론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노력과 물질을 쏟아가며 공동체를 지켜내야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 땅에서의 행적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으리라. 주께서 공생애를 위한 기도를 마치신 후 대중을 향해 복음을 전파하시기 전, 가장 먼저 하셨던 일은 바로 다름아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마 4).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우면서도 이 부분이 너무 자연스럽기 이를데 없어 그 의미를 간과하기 쉬운데, 사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치루시며 열두제자 공동체와 동행하신 것은 한편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였다. 왜냐하면 그의 공생애를 곰곰히 곱씹어 보건대 예수에게 열두제자가 그리 '쓸모있는' 사람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자들이라고 해서 예수에게 금전적으로 이득이 된 것도 아니었고(마 14:14~17), 대중보다 예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는 것도 아니었다(요 14:8~9,16:17~18). 오히려 열두제자 내에서 서열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며, 무엇보다도 예수를 십자가 처형으로 내몬 배신자 가룟 유다 역시 열두제자 공동체 내에서 나왔다(마 26:14~16).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열두제자 공동체는 예수에게 짐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모든 사역을 열두제자 공동체를 중심으로 펼쳐나가셨다. 복음을 선포하시는 중에도 열두제자를 대중과 구분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자'라고 칭하시며 구체적인 설명을 더 하여주셨을 뿐만 아니라(눅 8:10), 손수 발을 씻겨주시는 섬김을 베푸시기도 하셨고(요 13:4~20), 십자가 처형에 앞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 피와 살을 나누어 주시며 축복해주시기도 하셨다(막 14:22~26). 그렇다고 열두제자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거나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예수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기에 필요했던 자격은 그저 '공동체의 일원'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쓸모가 묘연해 보이던' 예수의 행보는 훗날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게 된다. 열두제자들은 예수께서 핍박받던 자리에서 예수를 부인하고(요 18:15~18) 예수의 십자가 처형 직후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에만 급급했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의 부활사건을 통해 복음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모여 가르치고 배우며 지키는 신앙 공동체의 근간인 초대교회의 '몸'이 되기에 이르렀다(사도행전). 예수께서는 그에게 공동체가 짐이었을지언정, 장래의 일을 내다보시고 공동체를 섬기며 가르치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 공동체는 공생애의 목적 그 자체였다.
예수는 우리 모두가 한 입으로 고백하듯 '그리스도(구세주)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시다. 무한한 능력을 가진 그 분께서 공동체를 통해- 공동체를 위해 일하셔야 했다면, 우리에게 공동체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공동체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숙제같은 공동체'와 '무용론'을 이야기하며 글을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공동체'는 사회와 개인들 사이에서 정서적이고 실질적인 부분의 크고 작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또한 일부 '잘' 기능하고 있다.
그렇기에 전 국가·지역·마을·이웃·또래 공동체는 물론 친족과 가족 공동체마저 무너지며 각종 반인륜적 사회문제가 양산되고 있는 이 때에,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크리스천'으로서 함양해야 할 덕목과 끝내 지켜내야 할 가치의 핵심에 '공동체'가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2014년 봄, 백통을 시작하며. 우리는 '먼저가시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세로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한번 더 돌아보고, 공동체를 위해 우리가 기도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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