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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ool's Universe

Critique

[ 정의로 가는 길 : 시국에 부쳐 ]

 

-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계간지 겨울호 요청원고

 

텍스트 SNS의 인기가 한풀 꺾이고 이미지 SNS가 득세하면서 '사진기술'이 일상생활의 새로운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에서 사진 잘 찍는 법을 검색해보면 다양한 기술들을 손쉽게 배울 수 있는데,

이제는 전 국민의 상식이 되어버린 '얼짱각도'는 물론, 피사체의 크기나 종류, 그리고 배경의 상황에 따라

구도, 조도(밝기), 셔터스피드, 초점, 심도(F값) 등 사진 찍기라면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을 열고 촬영버튼 누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알못'(사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뭇 복잡하고 심오한 세계가 펼쳐진다.

사진 좀 찍어본 사람들이 사알못에게 자기 사진촬영을 부탁하곤 결과물을 보고 타박하는 일도 일상다반사이고,

단체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소위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조용한 암투가 벌어지기도 한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는 보통 가운데 자리가 명당인데,

그것은 최근 스마트폰에도 광각렌즈(넓은 각도의 피사체를 한 화면에 찍을 수 있는 렌즈)가 기본사양으로 탑재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광각렌즈는 화면의 양끝으로 갈수록 우리 눈으로 보는 것보다 피사체가 더 늘어나보이게 해서 사진의 끝에 찍히면 얼굴이 크게 나오거나 살이 쪄보이게 된다.

이 특성을 반대로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전신사진을 찍을 때 얼굴과 몸을 화면을 가운데에 두고 다리와 발을 화면의 끝부분에 위치시키면

얼굴은 작아 보이고 다리가 길어 보이는 패션모델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화장술과 렌즈 이용술에 관하여 득도의 경지에 달한 몇몇 사람들이 예쁘고 잘생기고 멋진 이미지로

인터넷 상에서 큰 인기몰이를 하다가 TV출연이나 신문기사로 일상적인 모습이 노출되면서 실망한 네티즌으로부터 큰 비난을 받는 일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때면 항상 비슷한 논쟁도 함께 일어나는데, 과연 뛰어난 화장술과 렌즈 이용술을 이용하여 찍은 이미지가 과연 '진짜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다.

 

이 논쟁을 단순한 가십거리 정도로 여기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깊은 함의를 담고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은 철학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통 그런 비판을 할 땐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화장과 렌즈를 통해 재생산 된 이미지'의 차이를 두고 '본질과 다른 이미지'라며 분노하게 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는 것'도 사실은 망막과 시신경을 통해 취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 뇌가 재구성한(재생산한) 또 하나의 이미지(像)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눈과 다른 뇌를 갖고 있다. 저마다 시력도 다르고 색상 인지력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그런 인지정보를 조합하고 연산하고 판단하는 뇌의 능력과 이력이 모두 다르다.

 

그렇다. 우리는 같은 대상을 앞에 두고 서로가 똑같은 인지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같은 것을 똑같이 느끼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우리 뇌가 재구성한 이미지가 과연 대상의 본질과 같으냐?'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서 '과연 본질이란 것이 존재하느냐?'

혹은 '본질이 존재한다 한들 그것을 모두가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 하느냐?'는 질문에까지 닿게 된다.

일종의 물리현상인 피사체와 이미지의 관계와 본질을 이해하는 것도 이 정도로 어려운 일인데, 추상적인 관념이나 사상에 대한 문제는 말해 무엇 할까.

 

여기 유명한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 대해 세간에 떠도는 흥미로운 농담이 하나 있다.

가난했지만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나무꾼이 사냥꾼을 피해 달아나던 사슴을 숨겨주고, 사슴은 그에 보은하여 나무꾼에게 선녀가 목욕하는 장소를 알려주게 된다.

나무꾼은 선녀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선녀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곤, 선녀를 집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고 아이들을 낳는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뒤의 줄거리에는 여러 가지 변이(변형)들이 존재하고 그 결말도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으로 나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통 <선녀와 나무꾼>을 인용해온 행간을 되짚어 보건대, '성실하고 착하게 살다보면 사슴 같은 말도 안 되는 조력자가 나타나서라도

너에게 큰 복을 내려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전형적인 권선징악(勸善懲惡)형 서사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요즘의 사회적 공감대와 일반적인 도덕관념으로 이 이야기를 재해석하면 완전히 딴 판인 결과가 나온다.

나무꾼이 선녀의 목욕을 훔쳐본 것은 스토킹, 선녀의 옷을 숨긴 것은 절도, 선녀의 의사에 반해 그녀를 집에 가두고 아이를 낳게 한 것은

납치, 감금, 강간일 뿐만 아니라, 선녀에게 날개옷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차일피일 미룬 것은 사기에 해당하고,

부녀자가 집안일(家事)까지 도맡아야 했던 당대의 문화를 고려해볼 때 노동력 강제 착취의 혐의도 있다.

 

게다가 일련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도록 나무꾼에게 선녀의 목욕장소를 알려준 사슴에게는 스토킹과 절도를 묵시적으로 교사(敎唆)한 혐의가 있고,

이런 연쇄범죄를 모두 묵과하고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선녀의 강제 가사노동으로 함께 혜택을 누렸을 나무꾼의 어머니에게는 일부 범죄의 공범 혐의와 방관죄가 적용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착하게 살아온 사람에 대한 보상이 '선녀'라니, 도대체 어떻게 한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에 대한 '선물'로 이용될 수 있단 말인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통째로 인권유린의 결정체라 봐도 무리가 없을 지경이다.

 

여기에 조금 더 생각해보면, 또 다른 난제도 등장한다.

우리가 앞서 설명한 생각들을 종합하여 '<선녀와 나무꾼>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엔 적절하지 않은 이야기다.'라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낸다 한들,

과연 그 결론이 우리가 이 이야기를 공중도덕과 성실을 권장하는 도구로 사용했던 역사마저 모두 부정하고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걸까?

사람들이 웃음거리로 쉽게 주고받는 농이라지만, 이처럼 조금만 더 깊게 고민해 보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이다.

 

몇 년 전 우리 국민들은 부당한 국가권력에 평화적으로 저항했고 그 결과 ‘촛불정부'라 불리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뒤 수년이 흘렀다.

정의와 평등을 기치로 내세운 정부가 처음 출발할 땐 모두들 평화롭고 공의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 부푼 사람들이 많았지만,

정작 이 정부의 집권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것은 갈수록 노골적으로 일어나는 이익집단간의 충돌이고 더욱 더 격렬해지는 갈등이다.

어째서 정의와 공의를 주창하는 정부 아래, 어지러운 충돌과 갈등이 더욱 난무하고 부각되는 것일까?

 

 

<선녀와 나무꾼>의 사례는 우리가 큰 고민 없이 주장하는 '정의(正義, Justice)'에 대한 '정의(定義, Definition)'가 고정되어있기는 커녕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매우 빠르고 크게 변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또한 우리는 이미지와 피사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필요와 평소의 가치관에 따라

저마다 조금씩은 다른 '정의(正義)의 정의(定義)'를 가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관점들을 탑재하고서 우리의 어지러운 시국을 다시 들여다보면 조금은 새로운 이해의 지평이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소위 '촛불정부'가 내세운 '정의와 공의'는 광장에서 시민들이 외쳤던 '자유, 평등, 민주'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우리가 이 정부로 부터 새롭게 획득한 두드러진 권리 또한 노동자가 사용자(고용주)로부터 더 큰 자유를 획득하고,

소득격차(빈부격차)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억압을 해소하고, 언론은 물론 개개인이 더 큰 표현의 자유를 얻는 등 '자유, 평등, 민주'에 관련된 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가 몰랐거나, 혹은 간과했던 것이 있다. 우리는 자유, 평등, 민주주의가 확장되면 정의(正義)는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正義)의 정의(定義)'에 대해 함께 고민해본 경험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역사는 여태껏 정의(正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수준에까지 진도를 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주로 상명하복 형태의 '주어진 정의(正義)'에 익숙한 삶이었다.

주어진 정의(正義)에 토 달지 않고 성실하게 살다가 어느 날 조우한 사슴으로부터 선녀의 목욕장소를 점지 받듯 출세한 극소수의 사람들이 우리의 롤모델이었고 도덕기준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과거의 그러한 동경의 사례들을 거절하기 시작했고, 모두가 납득할만한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주어진 정의(正義)에 무비판적으로 복종하던 이들 중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자의 일방적인 은혜나 극악한 확률의 재수를 등에 업은 채 출세를 하고,

그렇게 정당성이 박약한 권세를 독과점한 소수의 사람들이 수많은 보통 사람들을 지배하며 착취의 열매를 누려온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부당한 처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뒤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구습(舊習)을 대체할 새로운 롤모델과 도덕기준의 세세한 내용들과 방법들이 어떤 것들인지, 우리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우리는 '정의(正義)'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면서도 실상 깊게 고민하거나 그 내용을 잘 따져보지는 않기에, 자기 생각을 고민하고 정리해서 나만의 정의(正義)를 정의(定義)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구나 그러한 개개인의 정의(正義)를 한데 모아 사회적 합의에 이르게 하는 일의 어려움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토의에 의한 통치'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소수가 결정하여 많은 이들에게 강요하는 주어진 정의(正義)가 아닌

우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민주적인 정의(正義)를 요구했고, 이제 막 우리 앞에 그 기초가 놓였다.

 

그렇기에 오늘에서야 비로소 갖춰진 평등과 자유의 토대 위에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 적이 없는 자기만의 정의(正義)를 서로 외치는 오늘의 시끄러운 시국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요, 피해갈 수 없는 진보의 도상(途上)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우리가 그토록 갈망해왔던 민주주의의 문 앞에 서서 한걸음씩 치열하게 전진하며 고군분투 하고 있는 또 다른 우리의 이면인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고조되는 갈등과 반복되는 반목을 접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며 정치적 냉담자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정의(正義)의 정의(定義)'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토론과 논쟁을 접해보는 것도 낯선 일이기에 그 과정 또한 서투르기 그지없지만, 서툴기에 나쁘다 해롭다 판단하고 덮어버린다면

후대로부터 '그만한 자유를 갖기엔 자격이 부족했던 세대'였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자. 우리는 정의(正義)로 가는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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