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여덟 생일 ]
1.
솔직히, 서른아홉번째인 줄 알았다.
내 나이를 까먹기엔
좀 이른 나이이긴 한데.
자못 원대하고 거창했던
젊은 날의 내 미래 구상과는 달리, 미처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한 나를 기다려 주지않고
한해한해 꼬박꼬박 기어코
늘어가는 연령에 의연하자면,
나이 까먹은 척 정도는
해야겠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 마흔은 싫었는지
망각의 오차가 서른아홉에 멈춰섰더라)
2.
코로나 중에도
세 번의 생일파티를 했고,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생일을 먼저 기억하고
물심양면 많은 축하를 전해주었다.
내 자본주의적 지성에 따르면
이것은 채무이니 앞으로
갚을 일이 산더미다.
하지만 이 빚짐이
내 생의 이유를 다시금
따스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한다.
혹여 이 넓은 우주에서
중첩상태에 그칠뻔한 나를
또 한번 입자로서 존재케하는
양자역학적 상호작용인 것이다.
3.
내가 그들에게 사랑을 심은 것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오히려
매 순간 내 모교의 가르침에 따라
자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선택만으로
삶을 채워온 것만 같은데,
어찌하야 거둔 것은 한아름이다.
심지 않은 사랑이 자라
내 부끄러운 몸을 숨길만한 숲이 되었으니
참 오묘하고 경이로운 일이다.
4.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중학생 시절 장래희망은
단 한 명으로부터라도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더랬다.
아 이 얼마나
계몽적이고 고급져보이나
관종스럽고 자기애 가득한
장래희망이란 말인가.
아무튼 중학생 시절의
꿈과는 사뭇 다르게
극도로 평범한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내가,
중학생의 재훈이에게
어떤 변명을 해야 좋을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지만.
어쨌든 난 요즘 하루하루 참
어제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특별한 사람이 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들이
날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있다고.
아니, 그렇게. 나로 인함이 아니라
사람들로 인해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고.
그러니 그저 안심하고
나이를 먹어도 좋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선물들배달이늦어서사진을늦게올렸습니다 #모두들고맙습니다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