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잡앤스토리(Job&Story) 연재기사
[나의 좌충우돌 입사기 : 박재훈] The His-Story
Story #2. 초벌구이 : 벤처사업이야기와 공기업의 입사-회사생활 이야기 ①
원문 : 잡앤스토리

이번 대화부터는 대학시절의 이야기와 벤처사업의 이야기, 그리고 공기업 입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었죠.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비전’이라는 한 키워드 위에 놓여 있고, 그 ‘비전’이 저의 고3 시절부터 시작되는 만큼, 먼저 고3 시절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제 부모님의 심플한 교육관입니다. 물론 이 교육관이 그저 사상의 깊이만으로 도출되었다기 보다는, 사교육을 시킬 수 없었던 경제적 사정의 영향이 컸었다는 점은 조금 씁쓸합니다. 아무튼 저는 부모님의 진보적인 교육관 덕분에 그 흔한 ‘공부 좀 해라’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저는 그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셈이죠.
저에게 있어서 ‘공부’란 언제나 ‘벼락치기’를 의미했습니다. 평소에 워낙 공부를 안했다보니 시험기간만 닥치면 친구들 몇을 모아서 밤새 노트를 베껴쓰고 암기를 해서, 다음날 시험지 위에 밤새 암기한 것들을 쏟아놓고 나오는 식이었죠. 그렇게 유지한 제 고등학생 시절 성적은 전교 200명중 100등 안팎을 맴도는 수준이었습니다. 감이 잘 오지 않으실 것 같아 조금 더 명확한 수준을 알려드리자면, 제가 고2때 처음 본 전국모의고사 성적이 종합등급 6등급이었습니다. 퍼센테이지로 따지면 상위 60%~77%. 참 막막한 수준이었죠.
◆고2때 찾은 인생의 꿈
그런데 이런 제게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비전’을 정립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저는 원래 어려서부터 ‘목사님’이라는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장래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해야 목사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일이지만, 저는 고2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막해 보이기만 하는 이 상황 속에서 앞서 이야기한 ‘큰 변화’가 시작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많이 늦었다고 생각하고 후회하거나 다른 목표를 세웠을 테지만, ‘주어진 막막한 상황’에 대응하는 저의 반응이 조금 남달랐던 것입니다. 저는 대학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그 당시 제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의 수준을 파악하고 제가 얼마나 성적을 향상시켜야 목표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2 겨울방학을 시작으로 즉시 대학진학의 계획을 작성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6등급이었던 제 성적은 고3 1학기 첫 모의고사에서 4등급, 여름방학 때는 3등급, 2학기엔 2등급, 그리고 졸업할 땐 1등급(전교 3등)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저는 진로와 대학공부에 대한 좋은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 서울대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모의고사 6등급이 서울대로
모의고사 6등급의 평범한 학생이 서울대생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 반이었습니다. 제 방에서 밤늦게까지 스탠드를 켜 놓으면 부모님이 잠을 주무실 수 없는 좁은 집이었기에, 아버지 사무실의 지하창고를 비워 텐트를 치고, 그 곳에서 1년간 생활해가며 밤늦게까지 공부한 결과였기에 더욱 값진 결과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등학교는 이과를 다니면서도 문과 공부를 독학해서 얻은 결과였기에 더더욱 값진 결과였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 드라마틱한 스토리입니다. 처음에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학을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너무 늦었다는 걱정이나 후회할 겨를 없이 바로 공부를 시작했을 땐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재훈이는 공부를 안해서 그렇지 맘먹고 하기만하면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을거야’ 라고 격려해주시던 부모님의 ‘흔한 격려’를 찰떡같이 믿었던 탓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공부를 ‘목적’이 아닌, ‘내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게 되자 앞뒤 따질 것 없이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전’입니다. 1년 반의 시간동안 제 잠재능력을 쉴 틈 없이 집중해서 쏟아낼 수 있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확고한 비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특별히 많은 부모님들이) 제게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점수를 올리고 서울대에 갔어요?’라는 질문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질문들에 되묻습니다. ‘왜 그렇게 대학에 가고 싶으신 건가요? 대학에 가면 당신의 인생, 혹은 당신의 자녀분의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인생을 비틀어도 흔들리지 않는 비전
제 고3 스토리를 듣고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탓합니다. ‘우리 아이도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재훈씨처럼 자발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도저히 할 생각을 안해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공부를 시작하지 않는 것은 자녀분들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공부해야할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고, 아직도 부모님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혹여라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한 공부로 대학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아이들은 대학입학 후 비전을 발견하게 되면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한 공부를 새롭게 해야할 것입니다.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거에요. 인생을 통틀어서 진짜 효율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은 지금 당장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비틀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비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인군자의 격언 같은 ‘뻔한 말’로 여겨질까 두렵습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제 ‘뻔한’ 속내를 들킬까봐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요인을 주장하려는 제 의도가 너무나도 평범하지 않은 저의 경험과 제 어눌한 언어에 가려질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처럼 제 경험은 절대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저는 모든 학생들이 저처럼 1~2년 사이에 바짝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확고한 비전’이 저와 같은 사람을 1년 반만에 서울대에 보낼 수 있었다라면, (나이가 아직 어려서) 시간이 훨씬 많고 몸도 건강한 아이들이 ‘확고한 비전’이 가질 수 있다면 더 크고 대단한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 고3의 경험은 ‘특정한 사건’이지만, ‘비전’에 관한 저의 주장은 ‘일반론’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일반론에 입각하여 제 인생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대학시절의 다양한 경험들, 벤처사업의 경험, 그리고 공기업 입사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사건들은 ‘비전에 관한 저의 일반론’에 입각하여 일궈낸 인생의 결과물들입니다.
이쯤에서, 제 인생과 비전에 관한 이 대화에 처음부터 관심을 갖고 참여하신 분들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한’ 의문을 갖게 되실 듯 합니다. “신학을 공부하겠다던 사람이 벤처사업을 하고, 공기업에 입사했으면서 ‘비전’을 논한다니 좀 우습지 않습니까? 실패한 것이 아닙니까?” 저는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비전에 실패하지 않았고, 지금도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 막막한 저의 억지주장에 대한 변명을 다음 회에서 들려드리겠습니다. 다음 회에서 대화를 계속 이어갑시다.
박재훈 한국남동발전 사원 gyool@kosep.co.kr
원문 : 잡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