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성 : ★★★★
구성미 : ★★★☆
참신함 : ★★★☆
총합점 :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008. 09. 25. 金. pm 07:30

‘모스크바!’, ‘모스크바!’, ‘모스크바!’.
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스크바’였다. 그녀들―세자매―은 지나치게 급변하는 플롯(plot) 안에서도 무대가 닫히는 순간까지 그 외침의 줄을 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에도, 사랑이 찾아오는 순간에도, 사랑이 떠나가는 순간에도. 그녀들의 관심은 오로지 ‘모스크바’ 그것이었다. 그것에 비해 극중의 남성 등장인물들은 권력과 명예에, 혹은 술에, 혹은 노름에, 혹은 여자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때문에 세자매의 일관된 열망은 자칫 남성등장인물들의 욕구를 저질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있을만한 비교대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단순히 일관된 열망이 있다고해서 그것이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세자매의 열망은 사실 ‘꿈꾸는 것’이상의 것으로 구체화되지 못했다. 대신 여성들은 모스크바에 대한 갈망을 곱게 접어 옷장 안에 넣어두고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으로 결혼을 택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 타협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마다 ―자신은 원래 이런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듯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옷장속의 그것을 힐끗 다시 들여다보는 일을 반복하며, 현실과 꿈이 충돌하는 지점에 자신을 몰아넣음으로 자신을 현실에서 괴리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때로는 ‘현실에 대한 절망’으로, 때로는 ‘막연한 꿈꾸기’로, 때로는 ‘외도’로 나타났다. 그렇게 그녀들은 모스크바로 가지 못한 자신을 현실과 구분 짓는 것으로 불만족을 만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평생을 바쳐 모스크바를 열망한 세자매는 마지막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모스크바 땅을 밟지 못했다. 체홉은 그것으로 그녀들이 선택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동시에 그녀들이 새초롬한 도피로 폄하할 수 있게 했던 남성들의 그것도 결국 세자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극을 지배하는 외침 ‘모스크바’는 ‘근사한 배우자’, ‘멋진 직업’등 우리가 마음속에 갈망하는 그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치환될 수 있는 너와 나의 외침이었다.
극중 남성등장인물들은 주로 그러한 삶의 이상향을 ‘여성’으로부터 찾았다. 명예와 권력을 원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그것은 삶을 동행하는 ‘아름다운 그녀’없이는 의미 없는 일처럼 보였다. 그에 비해 여성들은 무언가 구체적이지 않은 ‘막연한 어떤 것’에 휩싸여 있었다. 어찌되었건 남성과 여성을 불문하고 그들은 ‘그 무언가’를 쫓아 살고 있었다.
인간은 이렇듯 꿈과 희망을 향해―혹은 꿈과 희망으로― 생(生)을 달리며, 경주의 끝에서는 어김없이 죽음을 통해 실패라는 심판을 받는다. 하지만 인류는 선조의 죽음을 ‘인류의 꿈을 향한 숭고한 희생’으로 수식하며, 후대의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의 기제로 삼는다. 과정의 반복인 삶속에서 인간은 일상중의 작은 변화로 큰 이상의 파편을 찾으려는 몸부림을 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결과는 일상으로의 회귀일 뿐이다. 체홉은 이렇게 무대 위에서 ‘꿈에 대한 열망과 실패라는 매커니즘으로 인류의 삶을, 또 그 삶의 의미’를 자신의 이름으로 재확인하여 내어놓고, 그에 관해 함께 논하고자 했다.
극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첫인상은 무대가 매우 크다는 것이었다. 중소극장만 드나들던 필자에게 국립극장은 마치 공연장이전에 콘서트 공연장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직접 원어(러시아어)로 연기하는 극의 방식이나 원형의 회전무대, 아름다운 무대장치, 그리고 매우 사실적인 소품까지 모두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대형극의 특징이리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원어연기로 인해 무대 좌우에는 대형 프레젠테이션으로 번역된 대사가 투영되었는데, 그 운영이 대사의 속도와 제대로 맞추지 못하거나 대사가 잘려 나오는 등 매우 미숙함이 드러났다. <세자매>는 배우들의 특정 행위나 극의 전개보다는 배우들이 순간순간 대사를 통해 표현하는 감정이나 생각들이 극의 이해에 지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프레젠테이션의 미숙한 운영은 끝내 매우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안톤체홉의 <세자매>는 극의 길이가 요즘의 현대극에 비해 상당히 길고, 또 극의 전개가 쏜살같은데다, 필연적이기보다 우연적인 사건의 연속이어서 현대극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지루하고 극의 이해가 조금 까다롭게 느껴질 만하다. 하지만 그 극이 담고 있는 깊은 함의와 대사의 아름다움 등은 현대극의 고전으로 추앙받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개인적인 기회를 찾아 극을 관람해야 했다면 이런 극을 볼기회가 흔치 않았을 텐데, 수업의 기회를 통해 이런 경험을 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안드레이에게 ‘모스크바’는 대학교수가 되는 일이었다. 지금 내 삶의 무대에서 내가 외치고 있는 ‘모스크바’는 과연 어떤 것이고, 또 타협하고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