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GyoolGoon.
서울대 장애인권연대사업팀 2010년 문집에 실은 내용.
닳아빠진 신발바닥 틈으로 새어들어 온 빗물에 말초신경이 찌릿하게 얼어붙었다. 비오는 날에 이런 일이야 휴지통에 던져 넣은 우유팩이 휴지통 모서리를 맞고 튀어나오는 일만큼이나 비일비재하니 한숨 한모금이면 쉽사리 뱉어낼 수 있는 일이지만, 한기가 뇌량에 뻗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물기를 털어내는 다리는 한쪽뿐이라는 사실이 잠깐 아이를 감상에 잡아둔다.
수술후유증으로 전형적인 후천적 지체장애를 얻어 발육이 비정상이었던 전교 키번호 1번의 땅꼬마는 13년 전 13개의 초를 들고 무시무시하게 큰 학교를 걸어 나오며 꿈을 꾸었다. 초들을 반으로 잘라서라도 26개를 만들고 싶었던 그 시절, 꿈속의 '날'에 닿으면 세상을 반쯤은 갖게 될 줄 알았던 그 시절, 작은 아이는 머릿속에 수만가지 모양으로 '오늘의 아이'를 그려내었다. 의젓하게 수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모니터 앞에서 채점을 하던 날, 그리고 1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합격'소식을 듣던 날, 단 한 번도 아이에게 두꺼운 얼굴의 가면을 벗어보인적 없었던 아버지는 환희의 비명을 지르며 아이를 업고 한 걸음에 동네 한 바퀴를 달려 돌아오셨다. 수많은 대자보들과 무채색의 마이크 발언 소리가 온 캠퍼스를 가득 채우던 낭만적인 날들의 한 가운데, 아이는 아이보리 빛의 인본주의에 부풀어 '소리통'에 한껏 목청을 섞었다. 온 길을 뒤덮은 벚꽃을 밟고 지나면 핑크빛이 그대로 살갗에 배어들 것만 같던 날에, 아이는 배가 부르도록 길을 걸었다. 민주주의와 정의(正義)가 '장애'를 라이센스로 뒤집어줄 것만 같았던 그 날ㅡ 그리고 어느 날, 아이는 마취약에 취했고, 가느다란 빛의 모양을 한 꿈 사이로 코끝을 비릿하게 쏘는 전기톱 소리가 지나갔다. 그ㅡ, '그 날' 이후 코끝의 비릿함은 아이의 코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마취약 때문이었는지, 비릿한 톱 냄새가 끊임없이 아이를 취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벚꽃을 다시 밟았다. 벤치에 앉아 벚꽃잎 빗줄기 사이로 넘실거리는 햇살을 바라보는 길에 멀미가 날 즈음 슬로우모션으로 시야에 포착된 꽃잎을 잡으려 일어서는 찰라, 무릎이 부서져 내렸다. 아이가 꿈에서 깨어난 것은 그 때였다.
꿈에서 깨어난 그 아이는 갖고 싶어했던 26개의 초는 내팽개쳐둔 채, 몇 달째 부서진 무릎의 파편을 무겁게 쌓아두고서 정신없이 순서를 뒤지고 있다. 무릎의 파편들이 모두 순서를 되찾는 날 꿈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꿈으로 돌아가는 날, '그 날(刀)'에 베인 심근을 이어낼 수 있으리라고ㅡ, 아이는 여전히 꿈꾸고 있다.
GyoolG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