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미시 위주의 '주류 경제학'에 회의감을 느끼고 완전경쟁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실패에 대해 체감하면서, 현대의 자본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던가 자본주의적인 파라다이스가 어떤 것일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게된다. 지금 우리는 '각박하고 냉혹한' 자본주의 세계에 ㅡ동전한잎없으면 깨끗한 물 한모금 마실수 없는ㅡ 살고있기 때문에 사실 자본주의가 없는 세상은 '꿈도꾸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요즘 경제사를 배우면서 느끼는 가장 큰 점은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이전에는 개인주의라는 개념조차 희박했으며, 사람들은 일정한 집단내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공존해 나갔다는 것이다. 그들 각자는 그 안에서 없어서는 안될 한명의 구성원으로 존재했으며, 필요를 나누고 소비는 물론 감정, 더 나아가 삶을 공유했다. 한 사람이 아프면 한 집단이 함께 간호에 나섰으며, 한 집이 불에 타면 온 마을이 그 집의 재건을 도왔다. 그게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요즘의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파괴하고 공동체의식을 주장하면, 무슨 자신이란 '자아'가 순식간에 모래로 변해 바람에 날려갈것처럼 펄쩍 뛰지만, 그렇게 '개인', '개인', '개인' 노래를 부르는 현대인들은 역사상 최악의 '외로움'과 '인간소외'를 느끼고 있다. 우울증은 애교이고 자살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분명히 '개인주의'는 개인의 존엄성을 더 드높이는 일일진대, 어찌하야 요즘의 세상이 이리 되었는가? 인간은 알량한 '개인주의'를 외치며 그것을 '획득'함과 동시에, 인간이 맹수들 사이에서 살아남고 그들과 구분되며 뛰어난 생물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인 '사회의 구성'의 원리를 철저하게 부정했다. 그들은(우리들은) 막무가내식의 자유와 개인주의를 외침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매스컴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매스컴에 의해 회색빛의 '대중'이란 이름으로 묶임 당했다. 대중들은 개인주의를 외쳤지만,그래봐야 집단적이었고, 대중들은 내막을 알려하기보다 한쪽의 편에 '얼른' 서고자 하여 무지몽매하게 분위기에 따라 휩싸였으며, 그럴싸한 다수결의 원칙에 매료되어 어깨를 으쓱거리며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어 무슨 집단이든 (심지어는 애들의 교실에까지) '최고 권력자'를 만들어냈다. (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
뭐 초점이 조금 엇나갔다. 아무튼, 일단 자본주의가 세상의 원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상 그것을 송두리째 부정하고싶은 생각은 없다. 인간들은 무슨 생각인지 알맹이 없는 개인화를 추진해왔고, 어느정도 되돌이키기 힘들만큼 먼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개인주의의 기반위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여겨지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에는 여론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서두에서도 주장했지만, 현대의 자본주의는 오랜기간 깊숙히 썩어 들어가던 것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으며, 완전 경쟁 자본주의가 허상임은 물론이고, 그것이 이루어진다한들 인간들의 삶에 핑크빛 전망을 던져주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내 지난 글들에서 이어지는 일관된 견지에서 '경쟁'과 '자유'가 심화되는 사회에서는 절대부와 절대빈이 등장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은 애초의 자본주의의 원리가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이유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이야길 했다. 그렇다면 '경쟁'과 '자유'의 기치가 사회적인 '선'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글이 너무 길어졌다. 다음글에서 이어서 이야기해보자.
2008.10. 2.
GyoolG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