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총선에서까지 대승을 거둔 '한나라당'.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던 거대 여당 체제는 얼마전 민주당의 '국회점거'사태까지 불러 일으켰다. 쉽게 말해 '쪽수'가 딸리는 민주당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육탄전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이번 사태를 통해 민노당의 수장 강기갑은 다소 흥분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보수진영에 두고두고 지적당할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상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소귀의 목적을 달성한 듯 보이지만, 상대진영으로부터 '법'을 무시한다는 질타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지지자들 안에서도 '강경대응'에 대해 이견이 발생하며, 장기적으로 어느정도 지지율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나 보수진영의 사람들은 이참에 민노당의 설자리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핏대를 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민노당. 그들이 이러한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둬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이러한 육탄전에 대해 쏟아지는 사회적 비난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역사상 당대 시대를 지배하는 사상과 정치체계에 있어서 '문제'가 없었던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 모르긴 몰라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정의의 통치가 구현되는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까지는 이 땅 위에 '문제없는' 사상/정치란 존재할 수 없다.[footnote]당대 사회의 구성원 중 단 한명이라도 반발하는 구성원이 포함된 사상/정치라면 문제 없다 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 할 수 있다면,이 명제는 현실적으로 명백해 보인다.[/footnote] 우리가 앞의 가정에 동의할 수 있다면, 진보와 보수에 대한 논의는 참으로 급진전을 이룰 수 있다. 진보와 보수라 함은, 대한민국의 경우 역사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심히 왜곡되어 있고 고정되어있지만, 실상 진보와 보수는 아주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그것에는 사상이 들어있지도 않고, 그것에는 미묘한 '정석'이란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는 말 그대로, 변화를 추구하는 진영과 현재의 유지를 선호하는 진영의 양극을 설명하는 정치적 용어이다. 또한, 여기서 '현재'란 대부분의 경우에 '가진자'가 외치는 것이 '현재'로써 작용한다. (무작정 가진자의 목소리는 모두 잘못되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는 혁명적이고 개혁선호성향을 띈다. 또 반대로, 보수는 당대 현시적 체계의 균형을 맞추고, 체계의 안정성과 견고함에 기여하는 것으로 목적을 둔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 맥락과 얽히면서 왜곡되어 진보는 맑시즘이나 친북성향, 보수는 자유민주/자본주의 및 친미성향 으로 고정되어 있다. 게다가 현대(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진보나 보수나 서로 개혁을 외쳐대는 이상한 모양의 진보와 보수가 형성되어있다.
말이 좀 새어나갔는데, 다시 처음의 가정으로 돌아가서, '진보'라 함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더 나아짐을 초래할지, 더 못한 결과를 초래할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진보'의 존재가 '문제인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진보는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유용한 사고방식이다. (특정 사상을 지칭하는게 아님을 명심하자) 하지만 ㅡ경제학적 수학모델 산출 기법-_-을 활용하여ㅡ 극단적으로 진보만이 횡횡하는 사회를 상상한다면, 그것은 거친 파도와 방향없는 바람을 맞고 떠있는 돛단배와 다를 바가 없다. 진보만이 횡횡한 사회에서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상실되고 목소리만이 가득한 사회가 된다. 그렇다면 보수로써 모든것은 좋은가? 문제인식에 둔감한 보수로써는, 그것이 장악하는 사회안에서 똘똘하고 살아있는 사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은 고인 물이고, 썩어가며, 심지어는 스스로 썩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쯤에서 알 수 있지만, 진보와 보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진보가 존재하지 않으면 보수는 존재할 수 없으며, 보수가 존재하지 않는 진보는 없다. '절대진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사건(예수님의 재림과 같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 시대는 균형을 요구하며 언제나 양 극간의 '적당함'을 요구한다. 이런 논리에서 나는 불교적 사고방식을 선호한다.[footnote]개인적으로 불교는 사상적 종교가 아니라 뛰어난 인생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footnote] 하지만 중용에 있어서도 사회적 기준인 '가치'란 필요한 것인데, 가치라는 것은 언제나 그 시대의 기득권과 깊게 관련되어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진보는 비판받으며, 비판받는 진보는 또한 '진보가 존재 가능한 논리'[footnote]기존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footnote]로 보수를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절대진리가 하늘에서 뚝떨어지는 사건 이전의 '올바름'이란, 보수와 진보가 깔끔하게 성격을 구분하여 존재하며, 이런 서로에 대한 비판이 확실하게 살아있는 사회의 상황만이 올바름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양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그 전형적인 출발점이 바로 '진보'와 '보수'이기 때문이다. 이 둘이 올바르게 구축될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항해에 돛을 달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판단은 당대의 가치기준이 맡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런 논리에 의해 지금의 한국 사회를 판단해보자. 보수는 존재하는가? 진보는 존재하는가? 진보는 어떠한 문제의식을 갖고있고, 보수는 어떠한 가치를 유지하려 하는가? 보수와 진보가 모두 하나같이 개혁을 논하고, 자기논리가 아닌 친미/친북으로 보수와 진보가 갈리는 이 나라에 진정한 보수와 진보가 존재하는가? 필자의 하고싶은 말은 이것이다. 어찌보면 이런 이상사회가 실천되지 않는 것엔 자본주의가 들어섬에 따라 "보수"의 가치가 사상이 아닌 물질(돈)이 되어버린 것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역사의 성패는 후대에 가서야, 그것도 그 후대의 잣대를 가지고 판단받을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평가도 시대의 가치가 변함에 따라 바뀔 수 있기에 그 성패는 -거칠게 말해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설득력있는 가치기준을 가진 보수와 끊임없는 문제의식으로 시대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진보. 그 둘이 건강하게 살아서 사회적 역할을 다 할 때, 우리의 후대는 과거를 논하며 격양된 목소리로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위해서 우리의 진보는 시대적 문제점에 대한 민감한 반응과 치열한 브레인 스토밍으로 타개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며, 우리의 보수는 설득력있고 지켜질만한 가치를 갈고 닦아 우리의 미래를 고민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그 보다 먼저 무엇보다도 우리의 정치권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정치적 '다양성'에 대해 더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2009. 1. 12.
GyoolG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