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necessaris unitas
in unnecessaris libertas
in omnes charitas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를.
모든것에는 사랑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다름'(부수적인 문제)의 문제이고,
두번째는 '옳고그름'(본질적인 문제)의 문제이다.
다름의 영역의 것은 취향에 따라,
여러 상황에 따라 결론(결정)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옳고그름의 영역의 것은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취향이나 상황이 달라져도 바껴서는 안되는
결론(결정)이 있는 영역이다.
이러한 면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대함에 있어
'옳은 가치' 를 배척하고 무작정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방종'이상의 평가가 불가능한 무지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쇄, 라디오, TV, 인터넷,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확장·보급되고
또 이것이 자유·민주·계몽주의라는
시대적 흐름과 융합되면서,
세상은 '옳은 것'에는 눈을 감고
옳지 않아도 '다수가 원하는 것'을 옹호하는
깊은 자멸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
바로 '상대주의'라는 괴물이
모든 사상을 제압하고 있는 상황 때문이다.
상대주의는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구조적으로 승리할 수 밖에 없는 행태이지만,
'진리를 탐구한다'라는
현대 과학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며,
궁극적으로 비겁하고 알맹이 없는 승리일 뿐이다.
사실, 상대주의는 하나의 '가치'로서 역할할 수가 없다.
상대주의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네가 나를 인정해주는 댓가로 나도 너를 인정할게' 방식의
정치적이고 편의주의적인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상대주의로 인한 결과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자신이 배격받지 않기 위해서 가치판단없이
상대를 인정(사실상 무관심)하다보니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그저 방치된 상태로 공존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사회적인 문제들이 난립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본질'적 문제를 가르는 분별과
해당 본질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통찰,
그리고 계몽과 민주라는 얄팍한 정치적 상술에 근거한
상대주의에 대항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이다.
우리는 인파에 휩싸여 떠내려가듯
대세에 목소리를 섞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생을 바쳐 맹종하고 있는
'계몽'과 '자유', 그리고 '민주'가
과연 인류를 어디로 흘러가게 할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상술과
(날이 갈수록 더욱 잔인해지는)
합법적 착취구조 속에 살면서도
우리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2013.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