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한 단상
[왜 청춘은 힐링에 열광하는가 시리즈]
인간의 근원적 성향 중
뿌리 뽑을 수 없는 본질적인 성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외로움이리라.
우리가 흔히 생득적 욕구라 말하는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은 모두,
나를 이루는 물리적-비물리적 요소들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외로움에 관련된 욕구(관계욕,
타인의 인정에 대한 욕구, 명예욕, 지배욕 등)는
우리 존재의 근원적 불완전함을 증명한다.
오호라, 우리는 불완전하다.
그러하다. 나는 불완전하다.
하지만, 우리가 앞서 열거한 생득적 욕구를
평생토록 부분적-단기적으로 만족시키거나
제어하는 것 외에는,
욕구의 발생에 대한 제어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나는 나의 존재적 불완전함을
부분적-단기적으로 충족시키거나
제어하는 것 외에는,
내 불완전함의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게다가, 이에 관한 비극을 심화시키는 요소도 있다.
그것은 바로, 누구나 자기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가장 적날하게
나의 불완전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내가 나를 사랑하면 할 수록
나에 대한 탄식은 깊어진다.
나에 대한 긍휼도 깊어진다.
이 얼마나 갑갑한 노릇인가.
대항해시대의 유럽이
자기모순적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동물로 취급하면서까지
외부로부터 끊임없는 잉여이익을 취해야만 했듯이,
사람들은 이 내부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로부터의 잉여공급을 일으키고자 갖은 애를 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관계에 대한 욕구,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명예에 대한 욕구,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의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가 밥을 먹음으로
배고픔의 욕구를 영원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듯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결과물들은
한번 사용되고나면 영원히 소비되어
재생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일 뿐이다.

요컨대,
외로움은 나의 불완전함을 증명하는 증거이다.
고로, 외로움을 느끼는 나는(당신은) 불완전하다.
또한 나는 (모순적이게도) 나를 사랑한다.
어떻게 이 두 가지 욕구를 함께 해결할 수 있을것인가.
앞선 논의의 귀결로서,
나는 내 불완전함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나를 영원히 사랑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사랑은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내가 내 불완전함을 인정치 않고
끊임없이 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소비거리(땔감)를 구하는데만
평생을 바치고 만다면,
이는 다른 의미로,
끊임없는 모순적 자기 혐오가
나를 장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함을 의미한다.
혹시 당신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욕구(관계-명예-인정욕 등)들을 해결하는 것에
지독하게 목매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혹시 당신은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겉모습과는 달리
뿌리깊은 자기혐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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