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불편함'을 이야기하자>
백주년기념교회 청년부 계간지 백통(100Tong) 2014 여름호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확실히 배우게 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내가 가진 상식(常識)이 남들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것이 왜 상식인지 설명하라고 한다면 참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그러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던 것들에서 사람들의 의견차를 발견하게 되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것이 '개성이나 성향, 선호의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아이 참, 독특한 사람 다 보겠네"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 의견차가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 문제'에서 발견될 때면, 나는 "내가 잘 못 살아온 것인가, 아니면 저 사람들이 잘 못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큰 고민에 봉착하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나만 느끼는 어려움은 아닐 것이다.
가까운 과거에만 하더라도 서로 만나고 소통하는 주변 사람들의 대부분이 같은 지역에서 나고 자라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보니 이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십수년간 통신기술과 교통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면서, 이 문제는 더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다른 환경과 관계 속에서 살아 온 사람들과 쉽게 만나고 함께 공부하며 함께 일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터넷을 활용한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생활'이 일반화되면서, 오프라인에서는 '차마 하지 못할 말들과 행동'을 서슴치 않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특이하고 자극적인 컨텐츠가 더욱 더 빠르게 전파되는 온라인의 특성상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많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날이 갈수록 더욱 어려운 숙제가 되고 있다.
이렇듯 오늘 날의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을 하면서- 인터넷의 글을 읽으면서- 이른바 '상식의 미스매치'를 심심치 않게 겪게 되는 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특별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을 쌓아두게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미스매치가 단순한 불편함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깊숙히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이 불편함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 채로 시간이 흐르다보니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해 둔감해져가고 있다. 매 순간 일어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 어렵다보니,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고 용기내어 상황의 전환을 시도하기보다는 불편함과 찜찜함을 감수하더라도 그저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상대주의적 평화'를 택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결 판정으로 어느 쪽이 선택받건 간에 그것과 상관없이 분명히 '옳은 판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 문제가 '진리를 믿고 따른다'고 주장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하는 까닭이다.
최근 우리는 세월호 참사, 지방선거, 내각개편, 브라질 월드컵 등을 지나오면서 온 민족이 함께 고민하고 함께 결정하고 함께 감당해야 할 일들을 연이어 겪었다. 그 가운데 어느 누군가는 헤게모니를 점거한 승자로 살아남았다 자부하지만, 그 가운데 또 어느 누군가는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피력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누구의 의견이 정말 진리인지 가름해볼 겨를도 없이 상처받고 고개 숙여야만 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페북 포스트들을 비롯한 뉴스들과 베플(인기댓글)들이 내 시야를 정신없이 교란시키는 사이, 내 머릿 속에서는 '판단'을 기다리는 많은 일들이 '무책임과 무관심으로부터 발현된 귀차니즘'과 '알량한 민주주의-합리주의적 상대주의'에 묻혀 기억 저편으로 소멸되지는 않았는가.
이제 우리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자. 사회변혁이니 민주주의의 완성이니 하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일상적으로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매일같이 수만-수십만명의 '좋아요'가 달린 글에 내 좋아요를 더하고, 누군가로부터 배달된 '퍼온 카톡 메시지'들을 읽고 나르며ㅡ 만성적인 몸살에 빠져들고 있는 '나의 영혼을 구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지나쳐도 좋을 인터넷에서 만난 익명의 누군가로 인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존경하는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언제 드러날지 모를 '미스매치'를 무책임한 평화주의로 덮어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불편하게 하였는가', '그 불편함의 원인은 무엇이며 과연 나는 그 책임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가'. 우리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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