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단상
[ 청춘은 왜 힐링에 열광하는가 시리즈 3 ]
얼마 전에 쓴 '힐링과 가치관'에 대한 글과
'외로움에 대한 단상'과 이어지는 주제로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이를 먹은 것인지,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이혼하는 사람들의 소식도 심심치않게 들려온다.
그리고 이런 소식들을 접할 수록
이에 대한 내 고민의 깊이도 깊어진다.

지난 힐링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언급했듯이,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결혼을 단순히 규모의 경제에 의한
생활비 절감방안으로 여기거나,
혹은 남편·아내를 맞이함을 통해서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교환하며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계약으로
여기는 것이 만연하게 되었다.
결혼을 계속 이렇게만 대하다보니
결혼적령기에 있는 청년들은 결혼을 고민하기에 앞서
자신의 스펙을 시장가치에 맞게 저울질하며 평가하고,
스펙이 모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스펙을 얻기까지
결혼에 대한 고민을 무기한 보류하거나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낙심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스펙이 좋은 편이라고해도 사정이 넉넉치는 않다.
열심히 저울질해서 산출된 자신의 가치에 대비한
상대의 가치를 평가하며 끊임없이 비교하고 판단만하다가
결국 시간이 흘러(즉, 나이를 먹어)
스스로의 시장가치가 감가상각되어 버리고 만다.
(이 경우는 보통,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는 관대하고
상대에 대한 평가에는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인데,
사실, 결혼을 스펙으로 저울질 하는 대부분의 당사자가 이러하다.)
결국, 스스로가 판단하기에
자신이 너무 모자라서(혹은 너무 아까워서)
결혼시장에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을 고민만하다가
늙어버리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더 큰 문제이며 동시에 웃긴점은,
그렇게 늙어버린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한가 시절'에 대한
(소위 말하는 '리즈시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가만히. 곰곰히. 생각해보자.
만약 앞선 이야기처럼 결혼에 대한 가치를
'등가 교환'과 '단순 시너지'로만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결혼'만큼
멍청한 선택이 없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명백하다.
왜 그럴 수 밖에 없는가?
첫째로,
정말 원하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굳이 '결혼'을 통하지 않더라도
같은 효과를 누릴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내 부족한 능력이나 스펙을 채우는 것은
가족관계를 돈독히 해서 그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나,
종교적 공동체를 강화하는 것으로도 어느정도 가능하다.
동성의 싱글 친구들이 있다면 굳이
종교적인 연대감이 없다 하더라도
비슷한 생활 공동체를 만들수도 있다.
심지어 이러한 대안들이
결혼보다 더 기능적으로 우수한 경우도 많다.
오래도록 함께 지내온 가족이나
생물학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동성,
사상적인 기반이 같은 종교적 유대 관계가
단순한 감정이나 스펙으로 엮인 결혼관계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로,
결혼을 통해 얻게되는
등가 교환이나 단순 시너지의 효용보다,
그 계약이 파기(이혼하게) 되었을 때
감당하게되는 시간적·사회적 손해가 막대하다.
(즉, 기회비용이 무지막지하게 크다.)
결혼은 물론이거니와 이혼은
단순한 기능적인 역할을 넘어서서
'평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에 더욱 그러하다.
앞 선 두가지의 이유만 보더라도,
기능적인 효율을 획득하기 위한 결혼은
여러모로 위험하고 어리석은 판단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계산없이 '사랑'해서 결혼하면 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것으로 결혼에 관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고귀하고 깊은 사랑이라 할지라도,
사랑이란 감정의 깊이와 길이가
한정적인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그 감정의 교환을 담보로
결혼을 결정하는 일은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물론 사랑은 많은 위대한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며,
결혼의 확실한 필수조건임에는 이견이 없다.)
결혼은 인생과 인생이 합하여지고,
가족과 가족이 합하여 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결혼을 통해 진정한 시너지를 내기까지는,
수십년 이상 떨어져 살아온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공유할 수 있는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한 가지 삶의 방식(한 방향 한 가지의 길)을
새롭게 고안해 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 중에서
우리가 흔히 부딪치는 결혼생활의 벽이 등장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새로운 그림을 그리자면
기존의 밑그림을 지우는 과정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 이야기 했듯이
결혼이란 '두 가족' 간의 결합이므로,
결혼과 이혼에 관여하는 '당사자'는 두 명만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결혼 직후 일어나는 일들과 결과만을 두고보면,
당연히 시너지를 얻기 이전에 포기할 것과 잃을 것이 더 많다.
단순 계약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유무형의 손해가 난립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결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결혼은 '나의 인격과 사랑을 포함한 나의 인생 전체'를
'부부'라는 새로운 유기체(공동체)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결혼 이후 내 삶에 관한 모든 결정권한을
'나'와 '당신'이 아닌 '부부'라는 공동체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이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인생에 걸쳐 큰 시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 이유는
그 헌신이 '쌍방 간' 일어나는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즉, 결혼의 시너지는 결혼에 동참하는
구성원들이 만들어내는 '헌신'의 산물이다.
([ 자유 vs 평등, 그리고 경제적 효용극대화 ]에서
언급한 것 처럼, 개개인의 포기와 손해로 완성된 '사회'가
개인의 어떠한 소유로도 살 수 없는 '안전'과 '평화'를 선사하듯이)
그렇다면 결혼 후에 부부라는 새로운 유기체에게
내 결정권을 위임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한 일일까?
나는 그것을 '존중'과 '존경'에서 찾는다.
서로 간의 이익만을 고집하며 끊임없이 고집하는 사람들이
결혼 후 자신의 결정권을 내어놓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또한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시시각각 출렁이는 감정의 파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결정권을 위임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결정하더라도 감정의 파도가 자기를 삼킬때면,
그 결정을 후회하게 되거나, 가능하다면 뒤집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인생의 무게와
삶의 비전을 존경하는 관계는 다르다.
존경은 신뢰를 낳고, 신뢰는 자기부인을 가능케 한다.
또한 존경은 감정의 영역을 벗어나는 판단(결정)이기에,
사랑의 그것보다 출렁이는 진폭이 현격히 적다.
물론, 존경은 '실망'이라는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존중'이다.
상대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조차 인생의 과정 중 실패와 실수를
경험할 수 있는 '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며
결혼의 상대자로 선택한 상대방에는
그러한 실수와 실패, 그것을 가능케한 결함까지도
'이미 포함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존중'은
'상대방의 삶에 대한 공동책임'에 대한 인정을 수반한다.
작금에, 결혼을 한 많은 사람들이 얼마가지 않아
실패를 선언하고 이혼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이 쌍방간의 헌신은 건너뛰고
ㅡ 즉, 부부라는 새로운 유기체의 인격을 무시한 채
여전히 개인의 인격만을 고집하면서ㅡ
시너지만을 쫓아 결혼하기 때문 아닐까.
하지만 이는 마치
누군가 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자신도 대학에 합격해보겠다며
그 사람이 한 행동을 쫓아 책을 샀는데,
책 구매만 해놓고 공부는 안하는 꼴이다.
더 심각한건, 공부는 안해놓고 책샀는데
왜 대학에 합격이 안되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책값을 환불해달라 하는 진상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나 또한 이러한 세태 속에서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결혼'을 할 수 있을지,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 Column G 원문 >
[ 결혼에 대한 단상 ] https://www.facebook.com/columnofG/posts/133030633571810
< Column G 관련 글 >
[ 외로움에 대한 단상 ] https://www.facebook.com/columnofG/posts/131754467032760
[ 희소성 원리의 아둔함 ] https://www.facebook.com/columnofG/posts/131783410363199
[ 자유 vs 평등, 그리고 경제적 효용극대화 ] https://www.facebook.com/columnofG/posts/132273953647478
[ 자유 vs 평등, 그리고 경제적 효용극대화 ] https://www.facebook.com/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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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쿡
2014.05.23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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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ool
2014.06.11 17:32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써야겠네요 :) -
은계단
2015.02.23 09:41
안녕하세요~ Jobnjoy에 기고하시던 글을 인연으로 이렇게 블로그까지 이어지게 되었네요. '비전'에 대한 여러 단상들, 실존성- 삶 속에서 오는 치열한 고민들,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청년들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들.. 처음에는 갖고 계신 스펙이 뛰어나서, 혹은 '장애'라는 사회적 편견을 딪고 일어서게 해준 엄청난 정신력의 소유자시기 때문에 그 어렵다는 취업전선에서 단번에 승리하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말씀 그대로더라구요. 위대한 통찰력-비전 없이는 어디를 가서도 인간은 허망하고 공허해지겠지요.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삶이 평균적인 삶을 대변한다고 생각치말고,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이 사회현상의 시금석이라고 판단하지 말고 스스로 부딪히고 철학해서 얻은 판단을 신뢰하라는 메시지가 너무나도 와닿았습니다. 인생선배님께, 건강한 영혼과 바른 비전을 갖고 계신 사회선배님께 박수를 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주저리 글을 남기게 되었네요. 힘나는 글에 머리숙여 감사드리고,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제가 오래전부터 생각하던것들을 이렇게 보기좋게 정리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할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써주셨으면 저뿐만아니라 다른사람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꺼같네요 ㅎㅎ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