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용산에서는 때아닌 불길이 일었고 그 불로 6명의 목숨이 잿더미에 섞여 흩어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명박대통령은 이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다가 오늘(08.1.24) 7차 라디오 연설을 통해 어려운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용산참사에 대해 "며칠 전 용산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데 대해 더할 수 없이 가슴이 아프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이 자리를 통해 희생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고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와 같은 말로 쓴 약을 삼켰다.
이전부터 기대했던 언급이었던지라 필자는 그의 발언을 주의깊게 곱씹었다. 참 그럴싸한 말이다. 그런데 한번 다시 읽어보니 좀 어딘가 시원찮은 말이다. 그래서 다시한번 읽어보니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소리이다.
용산참사의 책임소지를 분별하기에 앞서, 우리가 현 시점에서 확언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공권력과 시민이 대치를 하다가 6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 사건의 진상이 어떻게 규명되건간에 바뀌지 않는 명백한 진실이다. 이러한 사건에 대해 총책임자(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처신은 상식수준에서 쉽게 답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그 진상이 어떠하건간에 가장 먼저 슬픈 마음을 표시하고 서둘러 사과를 준비해야 옳다. 하지만 용산참사가 터지자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명백한 진상규명'의 지시였다. 공권력과 시민이 대치하다 일어난 '사망사고'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이 어디에 서야할지 계산하기 위한 저울질을 시도한 것이다. 이처럼 사태에 대한 그의 마음가짐은 처음부터 옳지 않았다.
그런 대통령은 사건이 터지고 4일이 지나고 나서야 라디오를 통해 늦은감 있는 입장 발언을 했다. 하지만 칭찬할 만한 점은 발언에 일부 자신의 진심을 담아 이야기 했다는 것 이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 그의 발언엔 다행스럽게도 진심이 담겨있다. 하지만 나는 그 진심에 화가 난다.
이대통령은 참사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기보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해당 사건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는 방관자적 심중을 내비췄다. 즉, 이 사건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은 자기 책임회피에 그치지 않고,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석기'의 경찰청장 내정 철회를 확정하지 않음으로 '자기 사람' 먼지 털어주기에까지 나서는 뻔뻔함을 보여주고 있다. 김석기는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서울경찰청장에 임명되어 과잉진압을 일삼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19 개각의 어청수 후임으로 내정된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김석기는 용산참사의 과잉진압을 최종적으로 명령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명박은 앞에서 6명의 사망을 '안타깝다'라고 싸잡아 위로하면서, 뒤로는 그 책임자를 감싸고 도는 추태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정말 안타까운 점은 이명박의 진심어린 발언이 여기까지라는 것에 있다. 이대통령은 팍팍해질 연설을 우려해서 '가슴이 아프다'라는 위로의 말을 섞는 기교도 잊지 않았다. 그의 거짓이 사건 직후의 처신에서 이미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뻔한 인사치레를 섞음으로써 라디오 연설을 설날기념 삼류 개그로 전락시킨 것이다. 사실 용산참사는 현 정부의 멍청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만약 시위대의 과격시위와 불법적 행태를 그대로 두었다면 국민들은 정부의 편이 되었을 것이지만, 정부는 일어나지 않았어도 될 사건을 일으키며 적을 양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은 매번 비슷한 일에 대해 눈가리고 아웅식의 대국민 기만을 벌이며, 아슬아슬한 줄타기식 국정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들의 의중을 살피지도 못하는 정부가 멍청하기까지해서 권력의 오용/남용/횡포 이외에는 국민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법조차 모르고 있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대통령은 더 이상 썩은 떡에 꿀칠 하는 듯한 발언으로 국민을 기만해서는 안된다. 지금 그가 해야할 일은 사건에 대한 책임감의 표시이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긴 적극적 대처이다. 책임자에 대한 확실한 처벌도 그러한 일중 하나이다. 청와대는 설연휴 이후 김석기의 거처를 결정하겠다는 어정쩡한 발언으로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만약 벌어놓은 시간에 이러한 어설픈 물타기(라디오 연설)로 국민의 마음을 희석해보겠다는 생각이라면, 그 유치함에 얼마든지 찬사를 보내겠지만 동의나 격려 따위는 한푼도 건네줄 수가 없다. 라디오 연설을 듣고 김석기에 대한 설 이후 청와대의 결정이 더 궁금해진것은 과연 나 뿐인가.
2009. 1. 24.
GyoolG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