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뉴스에 당신의 돈이 지불되고 있다. ]
직업안정연구원 계간지 원고 일부
박재훈(www.gyool.net)
나는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 공기업에서 올해로 4년째 일하고 있다. 내가 이 곳에 취업한 이래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바로 2011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순환단전’ 사건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주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질문하며, 한전과 정부의 부실한 준비를 탓한다. 하지만 그 수많은 질문과 질타 속 발전소와 송배전 시설 건설에 관한 님비(NIMBY) 현상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 발전소와 송배전 시설 건설에 들어가는 ‘갈등비용’은 나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전력산업에 종사하는 몇몇 회사의 ‘이익감소’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력산업 공기업의 비용 증가는 결과적으로 한 푼도 빠짐없이 전력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에 우리 모두는 국가 정책에 군말 없이 따라야 한다!’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특정 지역과 특정 개인에 대한 손해를 어떤 방식으로 또 얼마만큼의 크기로 보상해야 할지’를 함께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에 얼마나 서툰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어차피 발생할 보상금과 합의금이었다면, 경찰을 배치하여 위화감을 조성하고 길거리에 드러누워 생사를 내어놓는 벼랑 끝 전술로 서로 대치하며 간접적 갈등비용을 늘리기보다, 미리 수많은 국내외 사례를 합리적으로 고려하여 거국적 합의를 거친 국가적 차원의 조정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맞춰 서로 양해하며 빠르게 정리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왜 우리 사회는 이런 ‘거국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일까.
‘사회적 갈등비용’이란 특정 집단 간의 이해관계 조율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보상금 및 합의금과 갈등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전체 편익의 기회비용을 아우르는 용어다. 앞서 설명한 발전소 건설로 설명하자면, 발전소 건설에 발생하는 직접적인 보상금과 합의금에 더해서, 발전소 건설이 지연되어 발생하는 간접적 손해(송배전 거리가 길어지는데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과 노후화된 발전소를 더 많이 가동하는데서 발생하는 연료비 차액과 고장·정비비용 등)를 비용으로 환산한 것이 ‘갈등비용’인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2010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적 갈등지수는 OECD 국가 중 2위로서 사회적 갈등비용을 연 최대 246조로 추산했으며, 사회적 갈등지수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내릴 수 있다면 국내총생산(GDP)을 연 7%에서 최대 21%까지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르게 말하자면, TV와 신문에서 뉴스로 접하는 ‘사회적 갈등’에 내 월급의 최대 5분의 1을 떼어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갈등’이 그저 ‘그들의 손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고 자명하게 ‘내 손해’가 된다는 점이 증명되는 셈이다.
사회적 갈등비용 문제 이 외에도 과도한 보험료 청구로 인한 보험요율의 증가, 대중교통의 불법적 무임승차 증가로 인한 운임단가 상승, 부주의하고 무분별한 공공재 사용으로 인한 공공재 설치 및 운영비용 증가(효율적이지 못한 세출 증가) 등 특정집단 또는 개개인의 이해관계로 인해 공동체 전체의 손해가 발생하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사회적인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이렇게 흘러가다보니 ‘제 주머니 똑바로 못 차는 사람이 멍청한 것’이란 불문율이 ‘인생의 격언’처럼 추앙되고, 더 큰 가치를 내다보며 개인의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을 향해 ‘네 앞가림이나 똑바로 하라’는 말이 ‘연륜에서 나오는 조언’으로 치부되는 현상이 가속화 되고 있다. 비견한 예로, 내가 3년째 일반인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독서토론 모임에서 ‘자유경제의 한계, 세계경제의 장기불황, 심각한 빈부격차 심화’를 주제로 토론하는 와중에 버젓이 ‘그래서 이 시황에 내가 어떤 주식을 사면 이익을 볼까?’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떠한가. 북한을 중심으로 한 고질적인 국제정치 불안요소는 물론, 수출중심의 경제구조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세계경제의 장기불황 등 우리 사회가 갖춘 체력과 연륜으로는 넘어서기 힘든 문제가 눈앞에 산적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성 강화’는 ‘전사회적인 보험’을 드는 것으로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합리적인 귀결이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암담할수록 보험이 산술적 가치 이상의 효용을 일으킨다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말이다. 우리 사회에 사회적 보험, 즉 공동체성 강화가 절실한 까닭이다.
산업화 이후 자본주의가 맞은 최대의 위기였던 1929년 세계 대공황 당시, 영국의 재무상으로서 수정 자본주의 정책으로 영국 경제에 산소 호흡기를 댔던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자유주의가 일으킨 실패를 공동체가 해결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자기 이익’에는 민첩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손해가 내 이익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월급을 동결하고 야근을 마다하지 않는 희생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혁신만이 우리를 불황에서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잔다르크가 될 수는 없으며, 모든 기업가가 스티브 잡스일 수는 없다. 영웅론에 입각한 보편적 정책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제는 남의 갈등이 내 비용이 되어 돌아오는 치킨게임에서 벗어나,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나의 중대한 손해를 이웃의 도움으로 메우는 마법을 일으키자. 이는 민족주의적 신파를 위시한 감정적 호소도, 또 하나의 사회적 비용을 일으키는 특정 이익집단의 데먼스트레이션도 아니다. 전사회적으로 개개인의 위험도를 헤징(Risk Hedging)*하는 합리적이고 수학적인 모델이다. 하루가 급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예측가능하고 확실한 정답, 결국은 공동체다.
* 주) 위험도 헤징(리스크 헤징, Risk Hedging) : 환율, 금리 또는 주가지수의 변동에 따른 손실위험을 배제·상쇄·분산하기 위해 취하는 모든 행동을 지칭하는 경제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