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대한민국은 브랜드 공화국,
프렌차이즈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도의 기술력과 마케팅력이 필요한
자동차, 휴대폰 따위는 물론이거니와
화장품, 의류, 신발, 치킨, 카페, 제과제빵은 기본이고,
도대체 왜 브랜드(프렌차이즈)여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귀금속, 헤어뷰티, 호도과자, 고기집 같은 것들도
모두 브랜드에게 시장을 잠식당한지 오래다.
이런 경제 전분야의 '브랜드화'는
소비자에게 그리 긍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첫째로, 브랜드 제품의 시장 잠식은
동종 브랜드 간 마케팅 경쟁을 과열시키기 때문에
불필요한 원가 상승요인이 된다.
둘째로, 시장유통단계가 늘어나기 때문에
이 역시 불필요한 원가상승의 요인이 된다.
셋째로, 일부 고급전략 브랜드를 제외한
보통의 대중적인 브랜드는 필수불가결하게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해야하므로
서비스나 제품의 질이 하향평준화 된다.
쉽게 말해서, 질낮은 서비스나 제품을
더 비싼값 주고 소비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명백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 대한민국의 브랜드화'를 부추기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그 해답을 공동체 붕괴에서 찾는다.
도대체 시장구조의 변화를
'공동체 붕괴'로 설명한다니 어이없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강력한 연결고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이 고민의 시작을
'우리가 왜 비(非) 브랜드를 기피하게 되었는가?'
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헤어'에서부터 시작하자.
헤어야 말로 브랜드(프렌차이즈)여서
좋을 점이 하나 없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브랜드 헤어샵에 간다고 그 유명한 '선생님'이
내 머리를 만져주는 것이 아니고,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균질한 서비스 결과물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서비스 결과물에 대해서
브랜드가 일정한 보증이나 보장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개인 미용실보다
최소 2~3천원부터 많게는 1~2만원씩 비싼
브랜드 헤어샵을 아무렇지 않게 이용한다.
도대체 왜?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 샵은 도대체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자격증을 딴지 한두달 밖에 안 된 사람인지,
20년 경력 내내 뽀글이 파마만 해온 사람인지,
여자머리만 잔뜩 잘라봐서 남자머리에는 도통 잼병인 사람인지,
아는 바가 없다보니 자연스레 믿음이 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개인 식당에서 어떤 재료를 쓰는지
어떤 사람이 운영하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보니
차라리 이름이라도 들어본 가게를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렇게 열광하는 브랜드 제품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사실 아는바가 그리 많지는 않다.
어떤 재료를 쓰는지, 그 운영자가 얼마나 대단한 경력과
이력을 가진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럼에도 전혀 모르는 가게 보다는
'이름이라도 아는' 가게에 '신뢰'를 보내며 이용하는 셈이다.
옆집사람 이름도 모르는
'공동체 붕괴, 개인주의'의 시대에
동네 가게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것 쯤이야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당연한 일이 브랜드만 배불리는 꼴이 된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가?
한두푼 더 주더라도 브랜드 제품을 이용해서
알량한 신뢰라도 확보할 수 있으면 다행아닌가?
아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절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10년대,
대한민국의 가장 큰 경제적 아킬레스 건은
'빈부격차의 확대'이다.
빈부격차의 확대는 비단
'부자들만 잘먹고 잘살고 나는 가난하니 너무 싫다'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2050년을 기점으로
하향세를 보일 것으로 여겨지며,
이와 관련하여 시장이 불황일 때도
화폐유통을 촉진시키며 경제를 견인했던 부동산 시장이
벌써부터 그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인구 노령화 + 출산율의 저하는
경제활동인구의 꾸준한 감소를 야기하며
사회적 부양율의 증대 등 다양한 경제부실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세계적인 경제불황도 장기화 되면서
수출중심 경제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은
벼랑 끝에 내몰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부동산을 필두로 한 버블붕괴와 장기 경제침체는
그 규모의 차이를 조정할 수 있을 뿐,
예견가능한 미래가 된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내수시장의 확대' 뿐이다.
내수시장의 확대는
국내에서 자국민끼리 거래하는 규모를 확대해서
수출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세계경제 불황같은 외생변수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도를 확보할 수 있게되어서
경제의 안정성과 신뢰도가 높아지게 된다.
요즘같은 시대를 이겨내기 위한
일종의 '필수적인 체질개선'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내수시장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바로 '빈부격차의 해소'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반대로, 아무리 돈이 없어도 꼭 써야하는 돈도 있다.
그렇다보니 빈부격차가 커지면,
꼭 써야할 돈 쓰기에도 돈이 모자란 사람과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아도 돈이 계속 더
남기만 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즉,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국민이 쓰는 돈의
총합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쓰는 돈은 누군가 버는 돈이 된다.
즉, 소비의 증대는 소득(GDP)의 증대이다.)
쉽게 말해서, 빈부격차를 줄인다는 것은
아무리 돈을 써도 남는 부자들의 돈을
꼭 써야할 돈 쓰기에도 돈이 모자라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보면 된다.
즉, 써야 할 것도 못쓰던 사람들이 돈을 더 쓰게 되니
시장에 풀리는 돈이 더 많아지게 된다.
이것이 곧 내수시장의 확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빈부격차 확대를 이끄는
가장 고질적인 문제점은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브랜드 선호 소비행태'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 '공동체 붕괴로 인한 개인주의의 확대'가 있다.
사실 공동체 붕괴의 악순환은
빈부격차 확대에만 기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가치의 실종으로 인한 배금주의 만연,
인간성 실종으로 인한 악질 범죄율 증가,
인간관계 네트워크의 약화로 인한
매스컴 권한의 비대화와 정치의 부패이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악성 문제들이
공동체 붕괴로부터 기인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전에 박근혜 정부가
일자리 증대를 위한 서비스업 확대 방안이라며
'국내 의료업계 외국인 진출 편의 확대',
'복지분야+고용분야 통폐합',
'국내 교육분야 규제 완화'를 내놓았다.
이러니 저러니 말은 그럴싸하지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대규모 자본 편의 확대'이고,
일자리 증대는 그 효과가 보장되지도 않는
(하지만 '그들이' 참 좋아하는) '낙수효과'로 인한 부수러기일 뿐이다.
결국 빈부격차 확대 정책일 뿐이란 말이다.
핵심은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배금주의가 낳은 공동체 붕괴다.
인간성 파괴다.
가치의 실종이다.
매스컴 권한의 비대화다.
정치의 부패다.
빈부격차의 확대다.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요즘 내 관심이 '개인의 비전'에서
'사회적 안녕'으로 확대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지고 있는 고민의 지점이다.
2013.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