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염, 위치, 성스러움에 대한 단상 ]
요즘 글 다운 글을 너무 안쓰기도 했고..
(아무런 이유없이) 연말 연초를 맞이하야
한동안 머릿속을 부유하던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가지 글감을 정리해보았다.
#1 오염과 위치 : 더러움은 장소의 문제
#2 위치의 상대성 : 어떻게 지평좌표계에 고정하셨죠?
#3 성과 속 : 내 위치의 원점이 되어줄 절대적 가치를 찾아서
며칠에 걸쳐 이 세가지 주제의 글을 찌끄려 볼 생각이다.
#1 오염(더러움)과 위치(장소) : 더러움은 장소의 문제
1.
우리는 밥알이 방바닥에 붙어 있을 때,
그 밥알이 '더럽다'고 느끼고 밥알에 의해
방바닥이 '오염'되었다고 말한다.
'오염되었다'라는 말을 곱씹어보건대,
우리는 '오염을 일으키는 주체'에
'오염의 원인'이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즉 위의 예시에서는 '밥알'이 오염의 원인이고,
'방바닥'은 밥알에 의해 오염을 당한 셈이다.
하지만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단언컨대, 밥알이 방바닥에 떨어지기 전
밥그릇 안에 들어있을 때에,
그 '밥알'더러 더럽다고 칭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그 밥알은 얼마나 깨끗한 것인지,
자기 자신의 입에도 기꺼이 넣을 수 있는
깨끗한 것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밥알은 어쩌다가 방바닥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오염의 원인'으로 변모하게 된 것일까?
2.
위의 예시에서 밥알이 방바닥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어떤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거나 정신적인 작용이 일어나서
밥알의 본질적인 특성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밥알은 그저 '위치(장소)'를 달리했을 뿐이다.
3.
이러한 '위치와 오염'의 관계는
비단 사물과 물리적 위치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어서,
누군가는 특정 계급이나 (사람)집단을 두고
'더럽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즉, 어떤 사람들은 특정 사람들이 '오염되었다'라고 비판하며
인종차별이나 계급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 경우 '오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러움의 대상'이 '더러움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지만 사실 '더러움'은 직업/출신/인종 등에 따라
그들이 주관적으로 부여한 '가상의 위치'로 인해
더러움이 정당화 된 것일 뿐,
진짜 그 대상은 단 한번도 '더러웠던 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4.
이에 관해서 사회인류학자 매리 더글러스는 그녀의 대표작
<Purity and Danger>(1996)를 통해
'더러움'은 물리적인 불결함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맥에서 발생하는 개념으로서
어떤 사물, 행동 등이 특정한 경계(위치)를 넘어섰을 때
발생하는 것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그렇다. '더러움'은 그 대상의 내재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 대상이 속한 '위치'의 문제인 것이다.
#2 위치의 상대성 : 어떻게 지평좌표계에 고정하셨죠?
어제의 '오염'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문과스러운 이야기였다면,
오늘은 이과스러운 이야기다.
1.
지구는 하루 한 바퀴씩 제자리에서 돌고, (약 시속 1500km 속력)
1년에 한바퀴씩 태양을 돌고 있다. (약 초속 30km 속력)
또한, 사람들이 아주 많이 간과하거나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태양도 같은 자리에 멈춰있는게 아니라 우리은하의 중심부를 축으로
약 2억 5천만년 주기의 공전을 하고 있다. (약 초속 220km 속력)
게다가 여기서도 끝이 아니다.
우리은하도 은하단에 속한 채로
또 은하단은 초은하단에 속한 채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참고로 과학자들은 우주에 초은하단이 1000만개 정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으니 도대체 우주는 얼마나 거대한 것인가.)
아무튼 그렇다보니 태양계의 실제 움직임을
상상하자면 위 동영상처럼 매우 역동적인 모습이 된다.
(물론 실제로는 태양에 비해 다른 행성들이
그림보다 더 훨씬 더 작고 행성들간의 거리도 상당히 멀어서,
실제 사이즈라면 태양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목성이나 겨우 보이려나..)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은하-태양계-지구 속에 속한 우리가
그 움직임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사람)의 질량이 지구의 중력에 붙잡혀서 함께 움직이고 있고,
관성의 법칙에 의해 우리가 그 움직임의 속도를
제로(0)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2.
"어떻게 지평좌표계에 고정하셨죠?"
유명 과학 유튜버 '궤도'가
한 장소에 귀속되어 활동하는 귀신을 뜻하는 '지박령'을 만나면
꼭 물어봐야할 말이라고 했다가 유명해진 멘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귀신은 질량이 없으니
중력이나 관성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할 것인데,
그런 귀신이 지구의 특정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으려면
지구-태양계-우리은하가 움직이것과 정확하게 동일하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구를 따라 움직여야만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구가 멈춰있다고 가정했을 때에만 유의미한
상대적인 고정 좌표계인 '지평좌표계'에 어떻게
귀신께서 고정되어 계신지 꼭 여쭤봐야할 일인 것이다.
가볍게 지나칠 수도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농담이다.
3.
그렇다. '위치(장소)'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실 매우 상대적이고 매우 주관적인 개념이다.
우리가 '위치(장소)'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고작해야
(사실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 지구 안에서나 통용될 법한 것들이고,
그것을 벗어난 위치라고 해봐야 지구를 중심으로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아주 대충 가늠하는 수준의 것들 뿐이다.
아직 우주의 거대한 거시구조와 그 우주 바깥의 상호작용은 물론
그 존재의 유무조차도 아는 바가 거의 없는 우리 인류(인간)에게는,
사실상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위치(장소)'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세상은 항상 움직이고 있기에
절대적 위치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4.
이제, 앞서 이야기 했던 '오염(더러움)'에 대한 내용에
이상의 '위치에 대한 생각'을 접목시켜보면
아주 재미있는 결론이 도출된다.
오호라! '위치(장소)'에 따라 정의되는 '오염(더러움)'이란,
결국 매우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오염(더러움)'을 판단하는 주체가 객체를 그저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것일 뿐,
이 세상에 대상이 그 특성을 귀속하는 본질적인 오염이란 없다!
#3 성과 속 : 내 '원점'이 되어줄 절대적 가치를 찾아서
1.
오염과 위치에 관한 앞선 두 이야기를 통해 '오염'과 '위치'의 문제를
'상대적인 것', '우리가 서로에 대해 본질적인
평가의 척도로 쓸 수 없는 것'으로 정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모두 우주에 귀속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벗어날 수 없는 내부적 존재들끼리 서로의 위치(또는 지위)를
정의하려고 시도해봐야 결국 상대값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그런데 만약, 우주의 시작과 끝을
모두 조망하는 우주 바깥의 '구별(구분)된 존재'가
(그 존재가 바라보기에 유한하고 고정된)
우주의 척도와 좌표를 정의한다면 어떨까?
'지평좌표계'가 우주적 관점에서는
쓸모가 묘연한 상대적인 값에 불과할지언정,
지구의 지표면에 속해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류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일반적인 생활상에서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듯이,
구별된 존재가 정의한 우주의 척도와 좌표는
우주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에게
본질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3.
'성스러움(≒거룩함)'을 표현하는 각 언어의 어원을 거슬러 오르다보면
대부분 '구별(구분)된', '순결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전 우주적 좌표계와 그 원점'을
찾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과 본능이
긴 역사에 걸쳐 반영되고 조각된 언어가 아닐까.
나의(당신의) '성스러움(거룩함)'은 '지평좌표계'에 속해있는가?
아니면 '전 우주적 좌표계'를 지향(답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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