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종 국가안보 2차장이 미국에 중재요청을 하지 않은 이유 ]
"미국은 분명 우리편인데? 일본놈들은 2차 세계대전때 미국한테 원자폭탄맞고 무조건 항복한 국가잖아.
그래서 우리가 독립한거고. 그러니까 미국은 자유주의 국가고 남한이 자유주의를 선택했으니까, 미국은 당연히 우리편이지."
아는 사람에겐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르는 사람에겐 너무 어려운 이야기.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국제적인 감각을 익히게 된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우리끼리야 우리가 자주적인 민족이라고 배우고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세계 역사 속 우리 민족은 왕을 세우고 국호를 정하고 세자를 책봉하는 등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중국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던,
중국의 제후국 정도로 인식되는게 보편적이고
(역사를 다룬 책들에서 사용되는 세계지도를 보다보면 한반도는 종종 중국과 경계없이 같은 색으로 칠해지곤한다),
그나마 그 중국의 제후국으로서의 역사 종말 직후에는 일본의 식민지였고,
그 직후에는 미국에 의한 간접 독립을 얻은 뒤 미-중-러 갈등의 사이에서 외세에 의해 남-북 분리독립을 당한 민족이다.
게다가 우리 민족은 스스로의 국제정세에 대한 감각도 매우 협소해서,
우리가 가진 세계역사에 대한 감각은 기껏해야 일제시대 즈음부터 시작되는게 보통이다.
그렇다보니, 일본이 어떻게 미국의 우방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아무런 감각도 갖지 못한 한국인이 태반이다.
그러나 우리가 중고생시절 역사시간에 대충 배우고 넘어간,
포츠머스 조약(미국이 일본의 요청에 따라 러-일전쟁의 종전을 중재한 사건)과
가쓰라-태프트 밀약(미국과 일본이 서로 필리핀 지배와 조선지배를 상호 인정한 합의)만 보아도,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일본과 미국은 각기 세계를 나눠먹고있던 제국으로서
서로의 제국적 권력을 상호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미국이 아직 파트너없이 전세계를 주무르기에는 덜 성장한 때였다는 점,
일본이 17세기 서양과 무역을 시작한 이후 경제-군사-외교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
17~19세기에 일본은 이미 유럽 대중사이에서 미술이나 수출품을 통해 세련된 동양의 문화를 상징하며 '존중받는 국가'가 되었다는 점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뭐 그 이유가 지금에와서 중요한 점은 아니고...
어쨌든 그 당시 일본은 미국과 여러 부분에서 대등하거나, 혹은 최소한 협상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을 멋진 민주주의로 무장한 연합군이 못된 독재자 히틀러와 일본 (추축군)을 혼내준 사건정도로 기억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자유무역주의)로 무장한 제국주의(미국)가 상호 존중하며 함께 세계를 주무르던
또 다른 제국주의(일본 + 독일,이탈리아)를 제압하고 전세계의 헤게모니를 잡은 사건으로 보면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말하자면, 서로의 관리구역(지배구역)을 존중해주던 동대문파(일본)와 서대문파(미국)가 있었는데,
어느날 전국적인 패싸움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후, 동대문파(일본)가 서대문파(미국) 아래로 들어가는 것으로 정리된 것이다.
그러니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에게 특별히 적대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더구나 중국이 G2로 성장한 오늘날, 미국에게 일본동맹의 중요성이 날로 비싼 값을 인정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일본-미국의 동맹이면 충분할 텐데, 굳이 우리를 왜 우방으로 두고자 하는가?
그것은 뭐 두말하면 입아픈 소리지만, 아래 영상에서 김현종 국가안보2차장이 설명하듯
대중국+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지정학적인 값어치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껏 세계 초강대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던 이유이고,
우리가 세계 초강대국 사이에서도 빠른 시간 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며,
동시에 미래에도 우리의 외교-국방-경제력과 사안 별 우리의 선택에 따라 우리의 흥망성쇠가 크게 갈릴 수 있는 이유이다.
결론적으로,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미국을 무조건적인 우방으로 여기며 '중재'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미국도 우리와 일본 사이에서 사안마다 계산기 두드리고 결정할 수 밖에 없다점을 매 순간 기억해야한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의 관계를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아무런 힘이 없던 시기(광복하던 시기)에 조차
미국이 우리와 일본을 구분하고 별도의 우방으로 관리해야했던 이유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