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사회인 다섯명의 직장생활의 이야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장애인 고용에 관한 정책지원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책적 패러다임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직업교육은 물론 취업알선에서부터 취업 후 접근성 확보를 위한 지원과 장애 특성별 기자재 지원까지 가히 장애인 취업과 직장생활에 관한 A to Z라 할 만큼 잘 짜여있다. 그렇다면 실제 장애인 당사자들이 취업시장과 직장에서 느끼는 것은 정책적 패러다임과 어떻게 얼마나 다를까. 실제 취업에 성공해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섯 명의 사회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자.
I : 기자(질문자) P군 : 벤처창업 3년차, 지체장애 2급(양하지 보행장애) M군 : 중소기업 1년차, 뇌병변장애 4급 K양 : 대기업 2년차, 지체장애 2급(양하지 보행장애) L양 : 공기업 4년차, 청각장애 2급 Y양 : 공기업 2년차, 지체장애 2급(양하지 보행장애) |
[I] 안녕하세요. 장애로 인해 여러 모양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실 텐데도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 뵈니 참 반갑고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오늘 취직했던 과정과 직장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여쭤보려고 하니, 솔직하게 대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겸해서, 본인의 장애정도와 지금 일하는 직장에 대해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벤처기업 P군] 저는 보행과 일상적인 업무에는 문제가 없지만 체력이 약하고 오래 걷거나 뛰는 등의 무리한 운동은 벅찬, 의족을 사용하는 지체 2급의 장애인입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대학을 졸업한 직 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벤처기업을 창업한지 3년째 되는 사업가입니다. 물론 사업이라고 해봐야 10명이 조금 넘는 소규모 회사이며, 저는 기획업무와 개발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M군] 뇌병변장애 3급의 31세 남성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애를 가진 것이 티나기는 하지만, 보행이나 업무 등에 전혀 문제가 없는 수준입니다. 제가 속한 회사는 강원도 원주시에서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약 100명 규모의 중소기업이며, 저는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K양] 어린 시절에 발육이 부진한 장애를 겪어서 키가 작고 다리가 휘어 보행에 불편함을 겪고 있는 31세 여성입니다. 서울 소재의 대기업 보험회사에서 고객관리 및 CS지원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는 병가로 휴직 중입니다. 회사의 규모는 총 직원 수 5천명가량입니다.
[공기업 L양] 저는 청각장애 1급의 32세 여성입니다. 현재는 지방이전을 완료한 경남의 한 공기업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전공을 살려 건축직군으로 입사하여 건축팀에서 일한지 4년째 입니다. 회사규모는 약 2천명정도 됩니다.
[공기업 Y양] 휠체어를 이용하는 서른 살의 여성입니다. 지금은 전직원이 8천여명 정도 되는 공기업에서 2년차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기술직군으로 입사했지만 장애로 인해 기술직에 관련한 사무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I] 다들 다양한 직장을 다니시고 계신데, 입사과정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벤처기업 P군] 저는 창업할 당시 주변의 친구 장애인들이 장애인 전형의 혜택을 보고 괜찮은 기업들에 입사하는 걸 보고 창업에도 장애인에 관련한 지원이 있을까 하고 여기저기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제가 찾지 못한 것인지 원래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혜택이나 도움 없이 창업을 했었습니다. 더구나 서울시창업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창업을 해서, 정부가 지원하는 벤처 인큐베이터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었지만, 그곳에서도 장애인으로서 특별한 보조를 받은 바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작은 도움 하나도 간절했던 시기였다보니, 그런 부분이 조금은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중소기업 M군] 처음엔 장애인고용공단의 직업교육과 취업알선을 통해 한 중소기업에 입사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심하게 낮은 월급과 야근은 물론 주말도 따로 없는 과다업무, 그리고 동료로부터의 심한 차별대우로 인해 얼마 다니지 못하고 퇴사해야 했습니다. 그 이후 계속해서 장애인고용공단과 워크넷 등을 통해 구직활동을 했었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1년가량을 지냈고요. 그러다 아는 지인을 통해 지금의 회사를 소개받게 되었고, 개별 채용면접에 합격하여 입사했습니다. 공채가 없는 중소기업이다보니 장애인이라서 입사과정 중 특별한 혜택을 보거나 한 것은 없습니다만, 회사에서 저를 뽑을 당시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을 채워야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점이 조금은 유리하게 작용된 것 같습니다.
[공기업 L양] 일정규모 이상의 회사라면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대부분의 회사들이 입사전형 1차(서류전형)에서부터 토익과 같은 공인영어성적을 필수로 요구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기평가 점수를 포기하다시피 해야 하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듣기평가를 제외한 점수로 환산해주는 등의 배려를 해주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사실상 청각장애인들은 1차부터 탈락이 예정돼있는 경우가 다반사이죠. 그렇게 가장 기초적인 단계부터 취업시도에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공인영어 점수를 요구하지 않는 장애인 특별전형 공채를 발견해서 바로 입사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다수의 청각장애인들은 장애인 전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인영어점수 때문에 실질적으로 지원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신경 써서 고쳐져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I] 지금 일하시는 환경은 어떻습니까? 장애인이라서 받고 있는 혜택 같은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중소기업 M군] 장애인이라서 특별히 주어지는 혜택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전에 다녔던 회사들에 비하면 동료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평등한 편이고, 회사 사장님도 좋은 분이셔서 큰 무리 없이 회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는 장애인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기보다 회사생활이 어려웠어요. 이런저런 혜택보다도 저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가가 회사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기업 K양] 저는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중소기업, 대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계약직 근무를 다수 해봤었는데요. 그 때는 장애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거의 없었습니다. 헌데 지금의 직장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이후에는 과다하다 싶을 정도의 많은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정규직 정규직 하는구나 싶습니다. 지금 제가 병가로 휴직중인데요. 장애인 의료복지혜택이 잘 갖춰져 있어서, 수술비용이나 입원비용에 제 사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기간 중 일부에는 월급도 어느 정도 계속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지체장애 2급의 중증장애인이어서 회사입장에서는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 달성에 큰 도움이 되는데 업무수준은 비장애인과 거의 다를 바 없다보니, 실질적인 회사생활 내에서도 저에 대한 회사 측의 배려와 평가가 아주 좋은 편입니다. 오히려 제가 말하기도 전에 사측에서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제 불편함을 물어보고 해결해주고자 합니다.
[공기업 Y양] 대기업 복지혜택을 듣고 있으니 부러워지네요. 물론 저희 회사도 공기업이다보니 앞서 들은 대기업만큼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충실하게 복지혜택을 제공합니다. 저는 입사당시 지방 사업소에서 휠체어를 타고 근무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 참작되어 신입 기술직군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본사발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신입사원 교육을 받을 때 혜택을 많이 받았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저희 회사의 경우 입사 후 직무교육을 일정기간 받게 되어 있는데, 제가 입사할 당시 휠체어 이용자가 교육원에 입소한 첫 사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입소할 당시 교육원 입구에 경사로를 처음 설치하고, 교육원 내 장애인 호실을 따로 배정해주는 등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장애인 화장실도 제가 입소하던 시기에 새로 설치했다고 합니다. 현업에서 일하는 지금도 장애로 인한 불편함 없도록 여러 면에서 배려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기업 L양] 저도 공기업을 다니고 있다보니 많은 부분 공감이 됩니다. 저도 입사시 발령과 배치에 있어서 우선적인 배려를 받아서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던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다만 저의 경우에는 업무시 전화통화가 불가능하고, 세미나 등을 할 경우 대필이 필요하다는 점이 현업에서 겪는 불편한 점인데요. 현재로서는 사내 대필 도우미 제도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대필은 제도적인 차원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선후배나 동료 팀원에게 부탁해서 대신하고 있는데, 청각장애인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I] 직장생활 중 어려움은 없습니까? 회사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공기업 Y양] 저희 회사는 비교적 장애친화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지나치게 배려하거나, 무조건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 동등한 사우관계를 맺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정책적인 지원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장애인을 ‘함께 일하는 동등한 동료’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하자만, 장애인 직원으로서 직장생활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더러 있으므로, 장애인 선후배 등과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멘토-멘티 제도 등이 지원되면 어떨까 싶습니다.
[공기업 L양] 청각장애인이 어느 정도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없다보니 도움받는 사람이나 도와주는 사람이나 도움의 정도를 정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간혹 업무 중에 듣지 못한 것이 있어서 다시 물어보면 ‘이건 몰라도 돼’, ‘이건 사담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분명 나쁜 의미로 그러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럴 때마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아쉽습니다. 또한 사내 교육과정 중에 동영상 강의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청각장애인으로서는 필수 수강해야하는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동영상에 자막이 없어서 수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 별 특성을 고려하여 세심하게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 여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보니 존경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 장애사회인 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벤처기업 P군] 장애인 혜택이 없다고, 조건이 열악하다고, 차별이 심하다고. 집에만 갇혀 지내거나 아주 쉬운 업무만 하면서 살다보면 나이를 먹을수록 그 빈약한 경력이 신체적 장애보다 나에게 더 큰 장애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끊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하고 각자 자기만의 전문성을 개발하는 것은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동일하게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 힘내셔서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중소기업 M군]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장애인으로서 차별을 많이 받아서 정신적으로도 많은 고생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일자리를 찾아다니고 경력을 쌓은 것이 결국 지금의 회사에 안착하게 된 기반이 된 것 같습니다. 희망을 갖고 경력을 쌓다보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지 않겠습니까? 파이팅입니다.
[대기업 K양] 장애인으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편견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비장애인들 입장에서 배려로 하는 말이나 행동도 어떨 때는 편견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저처럼 외적으로 한 눈에 티가 많이 나는 중증장애인은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회생활은 실력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입사 후 사내 업무평가에서도 항상 A등급을 받았고, 업무성과로 수상한 경력도 있는데요.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보니, 언젠가부터 상사에게도 차별보다는 진심어린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애를 이겨내는 것은 지원이나 혜택보다도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점.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공기업 L양] 옛말에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 주변에는 좋은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좋은 사람들을 그저 그런 사람으로 놔두어버리는 것이지요. 특히 청각장애인은 시각적인 불편함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자발적인 도움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 만큼이나, 스스로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조금씩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하고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작은 변화들이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공기업 Y양] 회사는 학교보다 훨씬 어려운 공간이긴 하지만, 미리 주눅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발적이든 정부정책 때문이든 이미 많은 회사들이 장애친화적인 환경을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회사측에 전달해 자신이 필요한 지원을 스스로 얻어내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모든 회사에서 장애인 직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처럼 가만히 기다리면 먼저 지원을 해주거나 정보를 얻어낼 수는 없습니다. 최선의 노력은 정당한 편의가 갖춰진 상황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I] 다섯 분 모두 충실하고 솔직한 답변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의 정부정책이 장애인 고용에 관해 다양한 패러다임과 비교적 괜찮은 수준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몸소 겪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부정책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공기업에서 조차 장애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등의 허점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공기업,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 기업규모 간 기업여건 간, 그리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수혜차이도 여전히 심각한 것 같은데요. 이제껏 정책과 예산 지원에 있어 외연을 확대시키는 것에 집중해왔다면, 이제는 장애 사회인의 실질적인 업무환경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정부정책과 예산집행의 질적개선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많은 개선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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